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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 몇이나 되십니까?

날고집이 2022. 9. 30. 15:43

 

오늘도 점심시간에 맞춰 야학선배가 다녀갔다.
80년 중반 대학 때 야학 강학활동을 함께한 분인데
매달 한번 씩 점심을 같이하러 내 일터로 찾아온다.

이젠 돌아가신 선배의 양친께선
내 치과의 단골손님이였다.
기독교 모태신앙인 선배는 서울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회활동을 할 줄 알았는데 이를 접고
신앙생활은 계속 열심히 하고 있다.

젊고 어렸던 날, 알고 지냈던 사이가
이젠 근 40년이 다 되어간다.
묵은 장맛 같은 인연이 감사한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다음 달에 또 보자며 나른한 오후
일과시간을 위해 헤어졌다.

어릴 적... 제사마치고 나면 내 부친께선
음복하라며 조상께 올렸던 술 한잔을 꼭 따라 주셨다.

술 한잔에 온 몸이 빨개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간에 알콜분해효소가 없던 부친께선
당신께서 마시지 못하던 술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필수요소임을 가르치시며
어린 자식들을 훈련을 시켜셨다.

대학입학 후 가입한 교양봉사서클은
모임이 있는 자리엔 늘 술이 따랐고
선배님이 건네주는 술잔을 거부할 수 없어
마셨던 술 한잔에
나 역시 몰래 화장실로 가서 위장속에 들었던 것을
다 게워내야 했다.

내 딸도 물려받은 체질로 술을 못하지만
이젠 바뀐 세대의 술문화에 그리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런지 모르겠다?

여튼 만남과 참여를 위한 술자리를 마다않고
이제껏 지내오다 술을 끊은 지 10년이 좀 더 지났다.
이후 술친구는 자연스레 정리되고
단지 할 일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친구
그나마 몇 있음이 감사하다.

젊은 날 의 세상을 잠시 잊게 해 주던
출렁이는 소주잔 위에 얹어
주고받고 마시는 우정도 맛깔났지만
이젠 말을 채우지 않아도 그 침묵의 틈이 어색하지 않게
녹차나 보이차가 함께 다시 자리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가 많이 없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인생을 잘 못산 것일까?
친구의 숫자가 과연 중요할까?
아니 숫자보단 흉금과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절친 한명이라도 있다면
교우관계는 성공한 것 아닐까?

이제 6학년을 넘어서니 어째 사람보다
온화한 봄날, 시원한 가을- 날씨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래전 어떤 선인께서도
有情의 벗 대신 無情의 다섯 벗 또한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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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버디 몃치나 하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
東山(동산)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구룸빗치 조타 하나 검기랄 자로 한다 <水>
바람소래 맑다 하나 그칠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난 믈뿐인가 하노라

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 <石>
플은 어이하야 프르난 닷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 아닐산 바회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곳피고 치우면 닙디거 <松>
솔아 너난 얻디 눈서리랄 모라난다
九泉(구천)의 불희 고단줄을 글로하야 아노라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竹>
곳기난 뉘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四時(사시)예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쟈근거시 노피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月>
밤듕의 光明(공명)이 너만하니 또 잇나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
- 五友歌 윤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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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벗이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본다.
다만 고산선생처럼 나 또한
유정의 벗보다 무정의 벗을 많이 두고 있는 편이다.
또한 붓다의 말씀을 벗 삼아 지내고 있다.

욕심 중에 사람욕심이 제일 위험함을 알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쳐 홀로 지내는 이가 적지 않다.
나 또한 사람들속으로의 긴 여행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며 등에 멘 바랑(bhāraṃ)과 여행가방을 내려놓은지 오래다.


어쩜 술이 필요하고 권하는 사회로 다시 돌아가면...
돌아온 탕자처럼 그들이 반길까 한편 궁금하기도하다.

 
法句經에
“사람이 오랫동안 없다가 먼 곳에서 안전하게 돌아오면,
친족(ñāti)들과 친구(mitta)들과 동료들(suhajja)이
그가 돌아오는 것을 반긴다.”(Dhp.219)
<씨족과 관계된 것은 친족이고,
상호교류로 성립된 것은 친구이고,
마음의 친절에서 생겨난 것이 동료이다.>(DhpA.III.293) 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친구(mitta)란 ?
“술친구가 있지만, 친구라고 말만 할 뿐입니다.
친구가 필요할 때에 친구가 되어주는 자가 친구입니다.”라고
‘씽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D31)에 나온다.

- 친구엔 선우(善友)와 악우(惡友)가 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하고,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 같은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하고,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하고,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알아야 합니다.”라는
착한 벗(善友)의 조건 네 가지가 있다.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1) 비밀을 털어놓고, 2) 비밀을 지켜주고,
3) 불행에 처했을 때에 버리지 않고,
4) 목숨도 그를 위해 버립니다.”(D31.16)는
절친(切親)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와 반면...
"1) 방일의 근본이 되는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 있는 것에 취할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2) 때가 아닌 때에 거리를 배회할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3) 흥행거리를 찾아다닐 때에 동료가 되어주고,
4) 방일의 근본이 되는 노름에 미칠 때에 동료가 되어줍니다.”
‘무엇이든 가져가기만 하는 친구, 말만 앞세우는 친구,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 나쁜 짓거리에 동료가 되어주는 자.”와 같은 나쁜 친구(惡友) 또한 있다.

“도박과 여자, 술, 춤과 노래,
낮에 잠자고 때 아닌 때 돌아다니는 것,
악한 친구들이 있는 것, 인색한 것,
이러한 여섯 가지는 사람을 파멸시킵니다.”(D31.13)라는 말씀이 있다.

나쁜 친구만이 아니라 좋은 친구 또한 그 관계에 있어...

“너무 자주 함께 만나거나,
아예 함께 만나지 않거나,
때 아닌 때에 만남을 요구하면,
그것으로 친구들을 잃게 됩니다.”

“너무 오랫동안 머무르면, 사랑스러운 자도 미워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자주 가지도 말고,
너무 오래토록 적조하지도 말고,
때맞추어 만남을 요구한다면,
친구들을 잃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Jat.528)라는
말씀을 이젠 늘 새기게 된다.

그래서...
“더 낫거나 자신과 같은 자를
걷다가 만나지 못하면,
단호히 홀로 가야하리라.
어리석은 자와의 우정은 없으니.”(Dhp.61)

“잘못을 지적하는 님,
꾸짖어 충고하는 님, 현명한 님,
숨겨진 보물을 일러주는 님을 보라.
이러한 현자와 교류하라.
그러한 사람과 교류하면,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없으리.” (Dhp76)

[ 친구(mitta), 동료(sahāya), 도반 (Sampavaṅka) ]

“수행승들이여,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그리고 또한 그에게 참기 어려운 폭언을 참아내네.

그에게 비밀을 고백하면, 그는 비밀을 지켜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가난할 때 경멸하지 않네.

세상에 이와 같은 것들이
발견되는 사람이 있다면,
벗을 바라는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을
벗으로 사귀어야 하리.”(A7.36)

“수행승들이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성실하고, 공경받을 만하고, 가르침을 주고,
충고를 받아들이고,
심오한 대화(gambhīra kathā)로 이끌고,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원리를 갖춘 수행승이라면,
거절하더라도, 도반(Sampavaṅka)으로 삼고,
사귀고, 섬겨야 한다.”
- 앙굿따라니까야 ‘벗의 경 (A7.37. mittasutta)’

아난다는 “세존이시여,
이러한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절반에 해당됩니다.”(S3.18)라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난다의 말에 대하여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라며 부정했다.

부처님은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라고 가르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과 사귀는 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왜냐하면 세존을 벗으로 삼아, 태어나야 하는 존재가 태어남에서 벗어나고 늙어야 하는 존재가 늙음에서 벗어나고 죽어야 하는 존재가 죽음에서 벗어나며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져야 하는 존재가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서 벗어난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과 사귀는 것이 청정한 삶의 전부라고 알아야 한다.”(S3.18)

- '나에겐 든든한 절친인 부처님이 있다’고 하면
너무 나간 이야기인가 ?



조만간 기장 아홉산 대숲 바람소리나 들으러
다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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